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원정 (문단 편집) == 병력 규모 == ||<#C0C0FF> '''교전국''' ||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width=130]][br][[프랑스 제1제국]][br]'''[[대육군]]''' || [[파일:러시아 국기.svg|width=130]][br][[러시아 제국]][br]'''[[러시아 제국군]]''' || ||<#C0C0FF> '''총사령관''' || 총사령관 겸 프랑스 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1세]] || [[알렉산드르 1세|러시아 제국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명목상)[br]총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 원수 || ||<#C0C0FF> '''편제''' ||'''북집단군''' ┗10군단 원수 [[자크 마크도날]] '''중앙집단군''' ┗황제 [[나폴레옹 1세]] / 참모장 원수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 ┗황제근위대 원수 [[프랑수아 조제프 르페브르]] ┗제1군단 원수 [[루이니콜라 다부]] ┗제2군단 원수 [[니콜라 우디노]] ┗제3군단 원수 [[미셸 네]] ┗제1기병군단 중장 [[에티엔 밀레 앙투안 샹피옹 드 낭수티]] ┗제2기병군단 중장 [[루이피에르 몽드롱]] '''좌측집단군'''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왕국 부왕]] [[외젠 드 보아르네|외젠 로제 드 보아르네]] ┗제4군단 중장 [[장앙도슈 쥐노]] ┗제6군단 중장 [[로랑 구비옹 생 시르|로랑 드 구비옹 생시르]] ┗제3기병군단 중장 [[에마뉘엘 그루시|에마뉘엘 드 그루시]] '''우측집단군''' ┗[[베스트팔렌 왕국|베스트팔렌 국왕]] [[제롬 보나파르트]] ┗제5군단 중장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제7군단 중장 [[장 루이 에벤에셀 레니에르]] ┗제8군단 중장 [[도미니크 방담|도미니크조제프 르네 방담]] ┗제4기병군단 중장 [[빅토르 라투르모부르그|빅토르 니콜라 라투르모부르그]] '''남집단군''' ┗오스트리아 예비군단 기병대장 [[카를 필리프 추 슈바르첸베르크]] '''후방예비군''' ┗제9군단 원수 [[클로드 빅토르|클로드빅토르 페랭]] ┗제11군단 원수 [[피에르 오주로|샤를 피에르 프랑수아 오주로]] ||'''제1서부군''' 대장 [[미하일 바클라이 드 톨리]] ┗제1보병군단 중장 [[표트르 비트겐슈타인]] ┗제2보병군단 중장 [[카를 바고부트]], 중장 [[예브게니 뷔템베르스키]] ┗제3보병군단 중장 [[파벨 스트로가노프]], 중장 [[페테르 코노보니친]], 중장 [[니콜라이 투치코프]] ┗제4보병군단 중장 [[파벨 슈발로프]], 중장 [[알렉산드르 오스테르만톨스토이]] ┗제(근위)5보병군단 대공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 중장 [[니콜라이 라브로프]] ┗제6보병군단 중장 [[드미트리 독투로프]] ┗제1기병군단 중장 [[표도르 우바로프]] ┗제2기병군단 중장 [[표도르 코르프]] ┗제3기병군단 소장 [[파벨 팔렌]] ┗카자크군단 기병대장 [[마트베이 플라토프]] '''제2서부군''' 대장 [[표트르 바그라티온]] ┗제7보병군단 중장 [[니콜라이 라에프스키]] ┗제8보병군단 중장 [[미하일 보로진]] ┗제4기병군단 중장 [[카를 시블스]] '''제3서부군''' 대장 [[알렉산드르 토르마소프]] ┗군단 중장 [[세르게이 카민스키]] ┗군단 중장 [[예브게니 마르코프]] ┗군단 중장 [[파비안 오르텐작센]] ┗군단 소장 [[카를 람베트]] '''[[다뉴브 강|두나이스카야군]]''' 제독 [[파벨 치차코프]] ┗제1군단 중장 [[알렉산드르 랑제론]] ┗제2군단 중장 [[표트르 에센]] ┗제3군단 중장 [[알렉산드르 보이노프]] ┗제4군단 중장 [[안드레이 자스]] || 이에 나폴레옹은 '''유럽 역사상 최대의 원정군'''을 꾸리게 되었다. 원정군 규모에 대해서는 450,000명에서 700,000명까지 여러 설이 난립하는데, 다수의 서적에서 취하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저자로 프로이센 군인이었으며, 러시아 원정때 러시아군 장군 바클라이 드 톨리의 진영에서 참모를 지냈다. 1830년의 유고집이 러시아 원정의 사료로 많이 쓰인다.]의 기록에 따르면 '''총 병력은 11개 군단 610,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1군단부터 9군단까지는 프랑스와 프랑스의 동맹국에서 차출했고, 10군단은 [[자크 마크도날]]이 맡았지만 총 30,000명의 병력에 프로이센군 20,000명이 차출되었고, 11군단은 온전히 오스트리아군으로 이루어졌으며 33,000명의 병력에 지휘권은 슈바르첸베르크 장군에게 위임되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대우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난 이유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가 나폴레옹의 장인인데다가 명목상은 대등한 동맹국이었지만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프로이센은 그런 거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60만 대군의 이동로로 사용되며 물자를 대느라고 프로이센이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이 중에 '''국경을 넘어 간 건 420,000명 정도였다.''' 기록에 따라 45~50만 명 설도 있다. 스웨덴과 영국의 상륙에 대비하여 발트해에 병력을 남겨야 했고, 미덥지 않은 동맹(?)이었던 프로이센 점령용 병력도 남겨야 했기 때문이다. * '''나폴레옹 본대''' 23,2000명([[프랑스 제국 근위대|제국 근위대]] 46,000명 포함) 러시아 원정군의 핵심으로, 나폴레옹은 근위대의 80%를 러시아 원정용으로 차출했다. 본대의 주력이었던 1군단은 다부가 맡았고, 나폴레옹이 평소 탐내던 프로이센 [[포병]]대를 선발로 데려갔다. 프로이센과 별도로 근위대를 제외하면 프랑스군 내에서도 프랑스인이 아닌 병사가 더 많았는데, 프랑스 제국에 합병된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라인란트]], [[네덜란드]], [[스페인]], [[일리리아]], [[바르샤바 공국]] 등의 영토에서 긁어모은 병력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동생 [[제롬 보나파르트]], 양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외젠]] 등의 병력을 합치면 모스크바 공략용 병력은 350,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 '''[[라인 동맹]]''' 병력 130,000명. 1806년의 협정에 따라 병력 130,000명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라인 동맹의 보호자였던 프랑스도 유사시 160,000명의 병력을 제공해 준다는데 어째 이것도 호구 느낌이... '''바이에른 왕국''' 30,000명, '''베스트팔렌 왕국''' 25,000명, '''작센 왕국''' 20,000명, '''뷔르템베르크 왕국''' 12,000명, '''바덴 대공국''' 8,900명, '''베르크 대공국''' 5,000명, '''헤센다름슈타트''' 4,000명, '''나사우''' 3,800명, '''프랑크푸르트''' 2,800명 등등이었다. * '''[[바르샤바 공국]]''' 병력 95,000명. 단일 국가로는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성공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부활을 약속했기에 폴란드인들에게는 이 원정에 '''조국의 흥망'''이 걸려 있었던 까닭이었다. 인구가 300만명밖에 안되는 국가에서 역량을 총동원한 결과, 대부분의 성인 남성들이 징병되었다. 이들이 떠나고 나자 수도 바르샤바는 유령도시가 될 정도로 텅 비어버렸다고 한다. * '''[[오스트리아 제국군]]''' 33,000명. [[벨라루스]]에 짱박혀 있다가 이심전심으로 싸움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은근슬쩍 퇴각했다. 남부 전선에서 토르마소프의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이기는 했으나 병력의 숫자를 고려하면 적극적으로 싸우지는 않았고, 전투의 대부분은 작센군이 담당했다. * '''[[프로이센군|프로이센 왕국군]]''' 20,000명. 역시 [[쿠를란트-젬갈렌|쿠를란트]]에 짱박혀 있다가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러시아와 내통하며 마크도날의 10군단에서 이탈했다. 이들과 대적할 [[러시아군]]의 육군 전력은 전역 초기에 [[카자크]]는 제외하고 370,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주력은 1전선군의 바클라이 드 톨리(바실리 데 톨리)와, 2전선군의 [[표트르 바그라티온]]이었다. * 1전선군 바클라이 드 톨리 127,000명. * 2전선군 [[표트르 바그라티온]] 45,000명. * 3전선군 알렉산드르 토르마소프 40,000명.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있었기에 초기 전역때는 남부 전선에서 작센군 및 오스트리아군과 교전했고, 공수 교대 이후 민스크를 탈환할 때 합류했다. 여기에 [[러시아 제국 해군]]에서도 크림반도의 [[흑해]][[함대]] 사령관 치차코프 [[제독]]이 [[해군]] [[해군 육전대|육전대]] 30,000명을 편성해 북상하여 나폴레옹 추격시 합류하고, 스웨덴과 강화하여 핀란드에서 40,000명을 충원했으며, 스웨덴은 전쟁 말기에 동맹군 20,000명을 리가로 파견했다. 그래서 러시아군도 프랑스의 대육군에 맞서기 위해 총력전으로 나갔는데 [[카자크]]를 합치면 전역 초기 나폴레옹의 침공 병력과 비슷한 450,000명선으로 대규모의 병력을 보유했다. 별 도움은 안되었으나 인구 1,000명당 신병 서너 명이 징집되어 전역 후반엔 민병까지 합쳐 숫자상으론 무려 900,000명까지 충원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